그동안 거실과 건너방에 있던 군자란, 동양란, 동백, 해당화, 산수국등
30여종의 화초들을 이제 날씨도 풀렸고 오전에 비도 내린다고 해서
모두 마당 베란다와 화단에 내다 놓고 정리를 마친후 아침 산책을 나섰다.
매일같이 다니던 덕성여대 돌담길을 따라 우이천변 으로 해서 북한산우이역
앞에까지 왕복 1시간 갔다가 다시 오던 길로 돌아왔었다.
오늘은 40여년전에 자주 다녔던 구 덕성여대뒷길 산책로로왔다.
그때만해도 주로 야산이나 밭이었는데 이제는 옛날 모슴은 온데간데
없고 자동차 대로가 뚫여 마을 버스들이 운행을 하고 있었다.
자유당시절 쌍용그럽창시자 김성곤별장도 있어 굳게 닿인 철대문앞으로
별장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산책했는데 이제 흔적도 없다.
그곳에서 고 박정희대통령과 막걸리를 주전자에 담아 서로 마시는
장면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자동차길 주변은 온통 빌라들을 지어 빌라촌으로 변모되어있다.
덕성여대 후문쪽 야산에는 효문중, 고교가 새로 들어 서있다.
덕성여대 후문길로 오니 덕성여대설립자 차미리사여사 동상이 도로옆에 서있다.
덕성여대 앞길로 산책을 많이 했으나 덕성여대초대(현덕성여대 대학교)
설립자가 차미리사여사인 줄을 오늘 처음 알았다.
3.1운동이후 종교교회에 여자 야학강습소를 설치,여성을 대상으로한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에 헌신한 분이시다.
덕성여대 후문길 공터에서 애들 초등학교시절 잠자리도 많이
잡아주고 자전거도 타고 애들 놀이터로는 그만 이었다.
동남쪽으로 걸어가니 그때 그자리에 있던 오래된 파줄소가 나온다.
집사람이 젊었을시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 앞길 비탈길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넘어져 다쳤던 고갯길도 이제 포장이 말끔히 되어있다.
덕성여대 앞길로 해서 내려오는데 셋방살면서 옛날 필자 장남을
낳았던 단독주택도 이제 2층 양옥으로 개축 잘 보존되어있다.
오늘은 40여년만에 젊었을시 부부가 함께 애들과 자주 산책코스였던
쌍문동 뒷산길을 따라 부부가 함께 산책을하면서 옛날일들을 회상하면서
감회가 새로워졌던 하루가 되었다.
수필가 최 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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