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고 뻔뻔한 노인들이란 소리 안
들으려면…
최수니 입력 : 2015.01.18
10:42
서울 갈 일이 있어서 경의선 국철을 탔습니다.
경의선은 문산에서 출발해서 구리 덕소 양평 용문까지도
갑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일산역은 몇 년 전에 새로 역사를 지어서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고 지상에 승강장이
있습니다.
간이역의 옛정취와 현대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역입니다.
승객도 많고 지난해 연말쯤 경의선에서 중앙경의선으로 이름도
바꾸고 경의선과 중앙선이 연결되어 긴 구간을 다닙니다.
주말 날씨가 춥다고 해서 옷을 잔뜩 껴입고 옥외 승강장에 내려섰는데 예상보다
춥지 않고 햇살이 따뜻해서 그늘진 곳을 피해 양지쪽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서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살정도 된 예쁜 여자아기와
배가 부른 임산부가 눈에 띄고 어떤 연세 많은 할머니가 계시는 곳을 지나 앞쪽으로 가려는데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들립니다.
"날이
추운데 아이를 마스크를 해가지고 나와야지....."
할머니의 그 말씀에 아이 엄마는 웃으며
"마스크가 가방에 있는데 아이가 안
해요." 라고 하자 할머니는
"그래도 마스크를 씌어야지 감기 들면 어떻게 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애를 잘 못 봐." 이러시니 대꾸하기
귀찮은지 아이엄마는 그 할머니를 피할 요량으로 앞쪽으로 걸어갑니다. 아기엄마 뒤에 대고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십니다.
"마스크를 해야 하는데
안 하고 나왔더니 입으로 바람이 들어와 더 춥네...." 요는 할머니께서 마스크가 필요하셨던 겁니다.
지하철이나 국철을 타 보면 맨
앞 차량이나 마지막 차량이 비교적 덜 붐비기에 앞쪽으로 가서 서 있었는데 아이 엄마도 따라 옵니다.
국철은 한 시간에 4대 정도 다니기
때문에 간격이 길어서 인지 앞쪽에도 사람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배가 나온 임산부인 아이 엄마도 조금 덜 복잡한 곳을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아이는 비교적 얌전했지만 추위와는 아랑곳없이 철길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호기심이 많아 보였고 몸이 무거운
아이엄마는 뒤뚱거리며 아이를 따라 다녔습니다.
요즘엔 노인들에 비해 어린이 숫자가 적어서 인지 아이들이 눈에 띄면 쳐다보게 되고 말은 안
해도 귀엽다는 눈길을 보내곤 합니다.
무뚝뚝해 보이는 어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를 쳐다보자 젊은 엄마는 예의바르게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 아이에게 이르자 아이는 배꼽 손을 하고 "하라버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기차가 와서 할아버지와 임산부 아기와 같이 탔는데 문산 쪽에서 꽉 차서 앉을 자리는 물론 없고 이미 서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할아버지와 임산부 어린이가 탔는데도 누구하나 일어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운데는 젊은 분들이 타고 있고 연인인 듯 보이는 젊은이
한 쌍도 흘끗 쳐다보더니 둘이 고개를 맞대고 이야기에만 열중합니다.
아기와 임산부는 어디 자리를 하나 맡아 주었으면 싶은데 충분히
일어설만한 중년아주머니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당연하게 앉아있습니다.
아이와 임산부를 앉히고 싶어서 두리번거리는 내가 오히려
민망했습니다.
공간이 비교적 있는 노약자석 앞에 가서 기둥을 잡고 임산부가 서 있는데 아이까지 있는 임산부에게 자리 하나 양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야박합니다.
지팡이를 양손을 포개 잡고 앉아있던 노약자석의 할아버지는 아기가 귀여운지 쳐다보다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줍니다.
음식점에서 계산 후에 입가심으로 주는 박하사탕입니다.
박하사탕은 포장지도 없이 맨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탕부스러기가 주머니에 떨어질 텐데 어떻게 저런 상태로 주머니에 넣었다가 남의 아기에게 주나 싶어서 내가 뜨악했는데 아이엄마
심정은 더할 것 같습니다.
아기는 좋다고 그걸 받아 들고 방글거리며 웃습니다.
착해 보이는 아이 엄마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인사해야지 하며 아이에게 인사를 시키고 자리에 돌아서서 반대편 기둥을 잡고 아이에게 "엄마가 집에 가서 줄께 차에서 먹으면 안 되지?“ 라며
뺏으려고 했지만 아이는 입에 넣지는 않고 박하사탕을 손에 꼭 들고 있습니다.
행신역에서 젊은 할머니가 내리고 아이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젊은 엄마는 아기 앞에 서있고 그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말을 겁니다.
"어디 가냐?"
아이는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웃기만 하고 아이 엄마가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라고 하자 "하라버지 안녕하세요. "라고 수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하시며 입에 미소가 걸리더니 주머니를 뒤져서 커피사탕을 하나 꺼내줍니다.
아기는 한손에는
박하사탕 다른 손에는 커피사탕을 들고 있습니다.
나는 유심히 젊은 엄마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아이 엄마는 살짝 인상이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감사합니다. 인사해야지” 라고 아이에게 시키자 아이는 “하라버지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나는 홍대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바꿔 타야 해서 내렸는데 그 이후의 풍경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이겠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를 잠깐 동안 여러 모습을 봤습니다.
마스크 타령을 하는 할머니는 자신이 집에
두고 온 마스크가 아쉬워서 엉뚱한 아이엄마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고
당신이 드시려고 아껴 두었던 사탕을 꺼내 주는 할아버지의 인정은
알겠지만 할아버지의 주머니에 포장지도 없이 들어있던 먼지 묻은 박하사탕이 아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이엄마가 반갑겠는가? 하는 생각은
안하신 겁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에게 단것도 해롭다고 안 주는데 커피사탕을 아이 손에 쥐어주는 어른을 아이 엄마 입장에서
고맙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런 친절은 눈치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일산에서 공릉동까지 왕복 네 시간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이러더군요.
학생들과 회사원이 출근하는 복잡한 시간에 큰 배낭을 메고 열차를 타야하느냐고
등산을 가면 어차피 산길을 걸을 탠데
건강을 위해 운동하러 가면서 열차의 자리는 꼭 앉아가야 하는지 출퇴근 시간은 좀 피해 다니면 안 되는지
의문이라고.......
눈치 없는 노인들이란 소리를 안 들으려면 사소하지만
이런 건 좀 시정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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