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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유적지를 찾아서

고향산천 2009. 10. 9. 11:01

이곳 남양주시로 이사 온지도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곳에 와서 유원지,관광지 그리고 가까운 곳을 찾아  산행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유명한 다산 유적지를 근처에 두고도  가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

있던차  벼르다가 오늘 유적지를 찾아 가보기로 했다.

 

오남에서 승용차로 구리시 도농사거리 덕소등 푸른 북한강을 끼고 팔당대교

팔당댐을 지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 유적지에 도착을 했다.

 

먼저 다산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나라의부패를 꾸짖던 선생의 찌렁찌렁한 목소리와 꿋꿋하고 검소한 다산의

생활이 보존되어 있는 생가 여유당을 비롯하여 200년 세월의 바람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지는 다산의 묘를 먼저 참배 하였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업적과 자취가 전시된 다산기념관과 다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보는 다산문화관에서 영상 영화를 관람했다.

 

다산 정약용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1762년에 이곳 한강변의 마현리에서 정재원의

4남으로 태어 나서 벼슬,집필등 유배생활을 하다가 75세에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다.

 

22세에 과거에 합격했으며 28세에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에 올랐으며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거중기,녹로등을 고안하여 축성경비를 절약 했으며 암행어사로 나가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수령의 비정을 고발하는등 백성을 위하여 공직을 수행했다한다.

 

40세에 책롱사건으로 정적들의 공격으로 억울하게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어 있는 동안

많은 책을 썼으며  18년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만년을

지냈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당파싸움 그리고 시기,질투로 인한 모함으로 당사자뿐만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과 피해를 주는 일들이 끊임이 없이 계속 되고있다.

 

다산은 나라와 민족 그리고 후손을 위한 1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고 한다.

대표작으로는 1표2서와 의학서 마과회통이 있으며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등을 꼽을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몇백년 에 한번 날가 말가 하는 부정,부패척결에 앞장섰던 국보급

목민관이며 사상을 초월한 문학의 대가 이다.

 

우리 지도자나  공직자들도 다산 선생 처럼  청렴결백하고 국민이 낸세금을 내돈처럼 절약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봉사하며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칼럼니스트,수필가 최 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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